나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경영학은 여러 세부 전공으로 또 나뉘는데 재무, 회계, 마케팅, 인사, 생산관리, 경영전략, 정보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이 중 내가 가장 선호하지 않았던 과목이 회계였다.

숫자 계산만 하는 게 지루하고 적성에 맞지 않았고,
그때는 시야도 좁아서 회계를 그저 ‘숫자 계산’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1원의 차이도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히 계산하는 것도 회계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기업의 경영 활동을 보여주는 시스템이며
회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를 운영하는 지금,
회계가 가장 큰 도움을 준다고 느낀다.

초기 스타트업의 최우선 과제는 생존이다.
그렇기에 현금흐름 관리가 꼭 필요하며 늘 런웨이를 계산하고 있어야 한다.
보통 모든 과제의 우선순위가 높고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진짜)우선 순위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럴 때 회계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판단에는 마음이 개입한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상적인 그림을 기준으로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허덕이다가 현실적인 걸 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캐시플로우 시트를 펼친다.
현실로 내려올 수 있다.
숫자는 내가 낙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생존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마음의 판단을 안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회계를 의사결정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덕트 A/B 테스트를 할 때, 실험의 영향으로 떨어지면 안 되는 지표를 ‘가드레일 지표’라고 한다.
회계 데이터를 중요한 의사결정의 가드레일 지표로서 활용해야 한다.

기업의 규모와 성숙도에 따라 회계의 적용 범위와 수준도 달라진다.
현재 우리는 사업 초기이고 규모도 작기 때문에 경리회계 수준이고,
지금도 우리 능력에 따라 단편적인 부분으로만 보고 있는 것일텐데,
런웨이로서 판단하는 걸 넘어서 사업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스테이지가 되면 좋겠다.

회계를 공부하는 친구한테 인간 계산기라고 놀렸었는데, 예전에는 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