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직진 차선, 우회전 차선 2차선인 구간이 있었는데
어떤 차가 직진 차선 선두에 멈춰서 우회전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우회전 차선이 밀리니 직진 차선으로 와서 조금 더 빨리 가려던 것이었다.
그래서 뒤에 있던 직진 차들은 결국 한 대도 신호를 못 받고 다시 빨간불이 되었다.
직진 차선에 있었던 나는 저 차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멀리 갔을텐데 생각하며 욕심이 많은 차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H 왈, “이번 신호는 내가 못 받을 신호였구나 생각혀~”
이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저 차가 아니었으면 받을 수 있는 신호였는데도?!”였다.
하지만 생각하다보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욕심은 내가 부리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는 상대의 행동에 기준을 두면 매사가 아쉬울 일 투성이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길을 갈 수 있으려면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게 방법이다.
예전에 읽었던 뉴스가 생각났다.
한국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박대성 화백의 작품에 어떤 아이가 올라타 작품이 훼손된 사건이었다.
1억 원 상당의 작품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다시 살펴보니 어린 아이의 눈에는 미끄럼틀처럼 보이기도 하겠다. 어린 아이가 미술관에서 나쁜 기억을 가지고 가면 안 된다, 사람끼리 굳이 원수지고 살 필요가 없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 작품을 210만 명이 넘게 봤을까? 그 아이는 봉황이다. 봉황이 지나간 자리에 발자국 정도는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큰 울림을 주는 일화였다.
화백님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는 차원을 넘어 이런 것이 대수롭지 않은, 초월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화백님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겨우 신호를 못 받았다고 상대가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너그러운 마음부터 연습하기로 다짐해 본다.
그렇게 계속 빚다 보면 조금씩 커지고 언젠간 큰 그릇을 갖게 되는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