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네마프(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라는 영화제의 개막식에 다녀왔다.
우리는 ‘필름업‘이라는 C2C 온라인 영화 판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영화제 온라인 상영으로 네마프와 MOU를 체결하여 개막식에 초청을 받았다.
어떤 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온 적은 많았지만 개막식 참석은 처음이었다.
시작을 기념하는 행사답게 개막작 상영 외에도 개막 공연, 개막 선언, 축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탈장르, 대안영상을 처음 접한 나에게는 흥미롭고도 생경한 풍경들이었다.
올해 네마프의 홍보대사로 선정되신 분께서 축사를 하러 무대로 올라오셨는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씽씽밴드라는 그룹으로 활동하셨던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님이었다.
나는 npr(미국 공영방송)의 ‘tiny desk’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즐겨 듣는데,
거기서 이희문님을 처음 알게 되었고 경기민요도 처음 접했다.
경기민요는 잘 모르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색다른 매력이 있다.
알 듯한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멜로디, 흥겨운 박자, 끊길 듯 끊기지 않는 구성진 바이브레이션(?)까지.
알쏭달쏭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서 일할 때 그런 바이브가 필요한 날에는 찾아 듣곤 했었다.
그렇게 인터넷에서만 들어왔던 사람을 무대에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공연을 하시는 줄 알고 설렜는데, 짧은 축사만 하고 내려 가셨다.
대신 그만큼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는 ‘잡스럽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단어를 들으면 주로 부정적이거나 천박한 의미를 떠올리지만
본인은 그것이 경계가 모호하고 규정 지을 수 없기에
어떤 것과도 섞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점이 기존 주류영상 문법의 틀을 벗어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 네마프와도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홍보대사로 써주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소개가 뇌리에 박혀, 앞으로 잡스럽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희문님이 떠오를 것 같았다.
오늘 입었던 강렬한 초록색 정장, 금발 단발, 마지막까지 쓰고 계셨던 선글라스도 같이.
어떻게 본인을 이토록 잘 표현하는 찰떡같은 단어를 찾으셨을까!
전통 민요에 다양한 장르를 섞는 크로스 오버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분이라,
이 ‘잡스럽다’라는 단어가 본인을 무엇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시그니처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그니처는 사전적으로 서명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중요한 곳에 본인을 나타내기 위한 식별 기호로 쓰는 것인데,
나도 나를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시그니처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효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