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와서 해변을 본 날 H는 얘기했다.
이제 남은 날동안 유일하게 하고 싶은 건 노을을 보는 것이라고.

오늘 노을을 보러 다녀왔다.
요즘 바르셀로나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인데,
그래도 오늘은 구름이 조금 있어 기대를 하고 갔다.

일몰시간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노을을 기다리는데
일몰시간이 다되어도 구름이 적은지 하늘색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 집에 가려고 일어났다.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바다사진을 찍는데
저멀리 얇은 구름 위로 어떤 동그란 형상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달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면 위로 달이 뜨는 장면을 봤다. 무려 보름달이.
깜짝 추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달이 뜨는 걸 한참을 보다 오늘도 소원을 빌고 집으로 돌아왔다.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그저 같이 달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날들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자주 생각나는 풍경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