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효율 신봉자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항상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아무리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비효율은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
그런데 요즘 ‘효율적인 게 정말 효과적인 것인가?‘ 다시 질문하게 된다.
효율이 더 나은 결말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하고 있는데,
특히 대화할 때 그렇다.
효율 신봉자답게 대화에서도 언제나 효율을 찾는데,
그것은 결론에 빠르게 다다르기 위해 필요한 정보, 궁금한 점을
최대한 뾰족하게 짚고 질문하는 것으로 주로 발현이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상대는 내가 어떤 생각과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밑그림을 그리기 어렵고
서로의 그림을 맞추기 위한 스무고개를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고려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지치기 해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확하게 질문하려던 것이, 상대를 불친절한 대화로 초대하는 격이 된다.
최근 일화
최근 루틴을 만들고자 영어회화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H와 대화를 하다 크게 깨달았다.
H는 영어 회화가 조금은 수월한 사람이어서 회화를 어떻게 수월하게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H는 쉽게 말하면 된다고 했다.
쉽게 말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아서 나는 효율적으로 물어봤다.
쉽게 말하는 학습법이 뭐야?
이 ‘학습법’이라는 좁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H와 나의 점점 멀어지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저 쉽게 말하는 방법 = 방법을 터득하는 워크플로우 = 학습법 이라고 생각해서 사용했을 뿐인데
쉽게 말하는 ‘학습법’은 없다고 생각한 H는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고
쉽게 말하라고 해놓고 방법이 없다고 하니 습득할 수 없다면,
쉽게 말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의 문장을 외우면 되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H는 쉽게 말하는 방법은 외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를 했다.
거의 한 시간을 대화하다가 지친 나는 “아니 나는 쉽게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데 쉽게 말하는게 대체 뭐냐” 라고 물었는데
그제서야 H는 내가 원하던 ‘학습법’을 알려주었다.
쉽게 말하는 게 어떤 거냐고 만 먼저 물어봤어도 한 시간 동안 대화할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 질문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큰 범주의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효율적으로 입력-출력으로 나올 수 있는 질문 위주로 물었던 건데
– 1. 학습법이 무엇인지? 2. 외우면 되는지? –
이게 불친절한 대화방식임을 자정을 넘기는 긴 대화 끝에 알게 됐다.
문득 사람들이 나에게 종종 하던 말이 기억났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그 말이 그 말이었구나.”
효율과 나의 과묵함의 콜라보가 불친절을 만들어 내다니…
내가 생각하는 비효율적인 = 구구절절이 오히려 양측에게 효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상기시키고,
친절할 수 있게 더 많이 말하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