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면서 요즘 제일 잘 쓰는 아이템이 하나 있다.
헬멧처럼 생긴, 얼굴 빼고 머리를 다 감싸주는 일명 군밤모자다.
이 모자는 몇 년 전 H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사게 됐다.
귀가 떨어질 듯 추운 날이었는데
H가 가게 밖에서 모자를 보고는 들어가보자고 했다.
H는 나에게 털도 부드럽고 엄청 따뜻할 것 같다며 사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언제나 캡모자만 쓰고 다니던 나는
그런 디자인의 모자를 쓰고 다닐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는 안 산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추운 가게 밖으로 나가자니 고민이 됐다.
H가 다시 말했다. 막상 이 모자 사면 엄청 잘 쓰고 다닐 거라고.
집가는 길에 한번만 쓰게 되더라도 추우니까 결국 사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웬걸.
군밤 모자의 포근함과 따뜻함에 중독돼버렸다.
매 겨울이 되면 거의 내 두피나 다름 없다.
정작 한번 써보니 군밤 모자스러운 디자인이 그렇게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편한 것보다 예쁜 게 더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반대였나.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 몇가지 사례가 떠올랐다.
H가 알록달록 동물 자수가 놓인 바지를 산다고 했을 때
잠옷 느낌이 난다며 만류했었는데,
정작 사고 나니 편하고 따뜻해서 H보다 내가 더 자주 입었다.
맥세이프 케이스와 케이스 지갑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편하다고 얘기하는 걸 들어도,
맥세이프 링 모양이 케이스 중앙에 있는 디자인이 못생겨보여서 계속 안쓰고 있었다.
그런데 L 덕분에 써보게 되었고 이제는 안 맥세이프는 못 쓸 것 같다.
카드 케이스까지 싹 바꿨다.
나는 알고보니 완전 실용주의자였나.
이렇게 아직도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것들이 있다.